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엄 미사 (문단 편집) === 평가 === 음악적으로는 교향곡 9번에 맞먹는 최고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갖고 있다. [[바그너]]는 장엄 미사에 대해 "베토벤의 정신이 담긴 순수한 교향곡적 작품"이라 했다[* 이는 [[파르지팔(바그너)|파르지팔]]에서 1막 다수를 성배 예식에 할애한 바그너의 안목 있는 평가다. 실제로 바그너 자신도 파르지팔의 미사 음악을 작곡할 때 베토벤처럼 중세는 물론 [[루터교회]]의 미사 음악을 많이 참조했다.].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작품 중 한 곡이지만 거장이 5년이나 걸려서 쓴 작품답게 그 긴 연주 시간 동안 1초의 시간도 섣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치밀한 구성을 갖고 있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이 곡과 관련해서 현재까지도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곳곳에서 보여지는 전통과 당대 어법의 혼용, 미사 전례문에 대한 도전적인 재해석이나 자의적인 비중 변경 등은 20세기 이후에도 [[테오도어 아도르노]]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 비평가나 음악학자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고들어 갈 부분이 많은 어렵고 복잡한 작품이다. 한편으로 장엄 미사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일반적인 기독교 종단의 예배에 쓰기에는 너무 규모가 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연주 난이도도 높다 못해 극한을[* 당시 일각에서는 베토벤의 귓병과 연관하여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인간 목소리의 한계를 넘어서 마치 기악처럼 성악 작곡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추구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전문 연주자들이 아니면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것이 현실. 실제로 이 곡의 연주는 대부분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하우스 등 '세속적인' 공연장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만약 종교 시설에서 연주한다고 해도 예배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는 경우는 전무하고 반드시 특별한 공연의 형태로 연주된다. 이 장엄 미사는 선배 작곡가 [[바흐]]의 미사 b단조와 규모와 음악성 면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자주 비교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규모 면에서는 몰라도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훌륭한 미사들이 상당히 많다. 미사는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창작되고 있는 음악 장르라는 것을 상기하자.] 신 다음으로 베토벤을 존경했다는 푸르트벵글러는 친구와 길을 걷다 바흐의 미사 b단조와 베토벤의 장엄 미사 중 어느 곡이 더 훌륭한가 의견을 나누었는데, 친구가 바흐의 작품이 보다 간결하고 종교적 본질에 충실하다는 뜻을 피력하며 손을 들어주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겠는걸."이라 말하며 홱 토라지는(...) 모습이었다고. 그 외 브루크너의 미사곡을 격찬하며 이에 견줄 작품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와 바흐의 미사 b단조뿐이라고 평하는 당대 평론가도 있었을 정도로 이미 이전부터 바흐와 베토벤의 두 미사 작품은 그 완성도와 깊이 덕분에 자주 비견되곤 했으며 단순히 미사곡의 준거 기준을 넘어 서양 음악 사상 최고봉에 위치한 작품들이라 평가받았다. 다만 푸르트벵글러의 친구가 말했듯이 b단조 미사가 좀 더 종교적 영성에 충실한 작품이라면 이 장엄 미사는 종교적 감동보다는 전통의 재해석과 새로운 음악 수법에 대한 실험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라는 차이가 있다.[* 장엄 미사에서는 가사 전달보다 음악적 효과를 더 중요시한 듯한 부분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앞서 곡의 구성 파트에 서술한 크레도의 가사 처리 수법이 대표적인 예.] 그래서 전례 없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수법이 난무하고 있으며 고래의 수많은 명작 미사들을 참고했으면서도 이들과는 매우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온고이지신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 한편 저렇게 베토벤의 장엄 미사를 최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던 푸르트벵글러는 정작 장엄 미사 녹음을 전혀 남기지 않았는데 젊은 시절에는 몇 차례 연주한 듯하나 이후로는 좀체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음악을 구현할 수가 없었기에 결국 포기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장엄 미사의 연주 난이도가 얼마나 극악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도 장엄 미사의 결정반은 찾을 수 없고 실연에서도 완벽한 연주를 성사시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공연이나 음반은 꽤 있지만 이들도 다들 한두 가지 이상의 약점을 갖고 있는데, 이 곡이 합창단과 4명의 독창자 및 교향악단(오르간 포함)[* 하나 더 덧붙이자면 베네딕투스에서 바이올린 솔로를 맡는 콘서트마스터의 독주 역량까지. 이 부분만을 까다롭게 평가하는 애호가도 많다.] 모두에게 1급의 기량과 더불어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합창 교향곡은 성악 파트가 마지막 악장 중반부터 등장하는 반면, 이 장엄 미사는 성악 파트가 90분 내내 별로 쉴 시간 없이 계속 소리를 질러야 한다(...). 따라서 완벽한 연주보다는 연주자가 제대로 된 연주를 위해 분투하는 과정[* 반농담이지만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 대목에서 '자비를 베푸소서' 간구하는 알토 독창자의 뺨이 붉어지고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을 안쓰럽게 지켜보자면 단번에 텍스트의 의미와 함께 인간의 무력함과 절박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체에 의의가 있고 또 그런 의도로 작곡되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이다. [각주] [[분류:가톨릭]][[분류:미사]][[분류:미사곡]][[분류: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작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